3차시는 성남시 총괄건축가 홍경구 단국대학교 교수의 특강으로 진행된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역사와 환경과 생태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고 교류할 수 있는 예술학교로서, 지금의 도시가 있기 전 이 땅의 역사에 이어서 ’성남‘이라는 도시가 생겨나는 과정을 짚어보고자 하였다. 도시의 생성과 발전, 정비의 흐름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성남시의 변화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국내 도시 변화 과정과 성남시
by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홍경구 교수(박사, 도시 설계 전공)
1. 도시의 변화
1) 한국 도시의 풍경 변화
1920년대의 서울, 그리고 1960년대의 서울, 2020년대의 서울의 풍경을 비교해본다. 1920년대 서울은 대부분의 집들은 한옥으로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했다. 민둥산이 당연한 풍경이었다. 종로에서는 서울이나 근교의 산에서 해온 나무들을 판매했고, 어린이들은 가사와 노동에 있어 어른과의 구별이 없었다. 한강은 서울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장소였다.
1960년대 서울은 시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임금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이를 위해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은 연고가 없는 낯선 이 도시에서 저렴한 숙소를 찾아야 했다. 가리봉동의 벌집, 청계천 주변의 무허가 건축물 등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풍경이다.
2020년대 서울은 시내 한복판에 깨끗한 청계천이 흐르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한강이 있다. 한강의 범람을 대비했던 실용적 목적으로 설계되었던 여의도 고수부지는 이제는 여의도 공원이라는 대표적 유휴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 청계천 복원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소설가 박경리이다. 비:건축가의 제안에서 시작된 청계천 복원은 서울시장, 부시장의 호응을 받으면서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도시개발을 위해 10년, 20년을 투자하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최소 3년에서 길면 5년 안에 순식간에 도시개발을 진행한다. 청계천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견이 있었고, 청계천의 상인들을 서울 송파구 장지동의 가든파이브로 내보내는 과정에서도 큰 진통이 따랐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고 합의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진행된 청계천 복원은 세계의 환경상을 휩쓸어 버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평당 가치 1억에 육박하는 이 땅의 권리가 과거에는 자동차(청계 고가도로)에게 있었는데 이제는 시민에게 땅의 권리가 돌아간 것이다. 비록 이토록 우악스런 개발을 통해서이기는 했지만.
한 번 만들어진 도시는 고정되지 않는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욕구, 생활방식, 삶의 태도 등에 따라 도시는 계속하여 변화한다.
2) 한국 도시의 주거 변화
2-1) 공장지대_벌집
경제발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던 1960년대, 서울에는 ’벌집‘이라는 주거가 있었다. 극도로 협소한 공간을 쪼개고 쪼개어서 만들어낸 셋집으로, 싸고 가까운 숙소를 찾는 공장노동자들이 이러한 벌집에서 거주했다. 당시 서울에서는 의류 관련한 산업이 발달했고 실제로 현재에도 서울의 일부 지역(창신동 등)에서는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월 2회, 격주 일요일 오후 시간에만 쉬면서 공장에서 근무한, 이 시대의 노동자들 덕분에 서울이라는 도시는 팽창하고 발전했다.
2-2) 청계천_달동네
1960년대의 고속 성장기, 취업을 위해 상경한 노동자들이 서울에 머물 수 있는 장소는 많지 않았다. 가리봉동 같은 공장지대의 벌집이나 산을 따라 형성된 ’달동네‘를 택하거나, 청계천 물가에 자리를 잡는 것이 쉬운 선택이었다.
청계천은 서울의 일자리가 밀집된 종로에서 일을 마치고 걸어서 돌아갈 수 있는 적당한 위치에 있으며 집세도 매우 저렴했다. 초기에는 청계천변의 집들은 적당한 여유와 간격을 지키고 있었으나, 갈수록 불법 증축으로 인해 빽빽한 밀도를 갖게 되었다. 집을 덧대고 덧대다보니, 화장실 하나를 다섯 가구 이상이 공유하는 경우도 흔했다.
2-3) 한강변 군사기지_아파트
서울 중심지에 위치한 아파트들은 평당 1억을 넘나든다.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는 프랑스 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남긴 “한강변의 군사기지 규모가 정말 대단하다”라는 말로써 자주 비판받는다. 그런데 아파트라는 우리의 독특한 주거 문화는 어디에서 왔을까? 바로 프랑스의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르 꼬르뷔지에는 프랑스 파리의 불결함과 혼재됨을 개선하기 위하여 새로운 주거형태로서 아파트를 제안했고, 파리를 전부 아파트로 재건축하고자 하였다. 본고장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아파트가 정작 아시아권 국가들, 특히 한국에서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아파트는 주거의 편리성 이외에도 여러 가지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모든 상품이 균질하다는 특성을 가진다. 저층이냐 고층이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동호수가 차별 없이 똑같은 구조를 지닌다. 아파트는 거래가 쉽다. 환금성이 높아서, 부를 축적하는 대표적인 수단이 된다. 일반적인 1주택자, 실거주자의 경우에 그의 아파트는 몇 번이고 이사하며 집을 찾아 헤매고 부를 축적하고자 애쓴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벌집, 달동네, 아파트와 같은 도시의 주거는 단지 겉보기에 멋지거나 흉하거나의 차원이 아니라, 한국적 상황과 애환을 읽어낼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2. 한국의 도시화
1) 100명 중에서 40명
인구 100명 중에서 40명이 도시에 살 때, 도시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본다. 행정상으로는 읍 이상의 규모를 도시라 한다.
1920년대에는 도시화 비율이 37%였고 평균수명은 53세였다. 그리고 2010년, 평균수명은 80세에 이르고 도시화는 90%에 달한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도시화가 진행되었으므로 1960년부터 100명 중에서 40명이 도시에 산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의 도시 인구는 1000만 명이라고 계산할 수 있다. 2010년은 100명 중에서 90명이 도시에 살게 되었으므로 도시는 4600만 명의 인구를 갖게 된다.
즉, 1960년부터 2010년까지, 50년 동안 도시에는 3600만 명이 늘어났다. 거칠게 말하면 5년마다 350만명씩 도시의 인구가 추가된 것이다.
부산시의 인구는 350만명이다.
우리는 5년마다, 부산시 하나씩이 추가로 생겨나는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
3. 국내 도시정비 50년
아파트 단지 하나를 짓기 위해, 심사에서부터 준공까지 걸리는 시간은 빨라도 5년이다. 5년마다 부산이 하나씩 생겨나는 속도로 달려온 한국의 도시화에서, 삶의 질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2010년, 인구가 어느 정도 정점에 올라서면서 한국의 도시는 정비되기 시작한다. 도시의 재정비에 관한 법령이 대거 생겨나고 뉴타운, 재개발, 재정비, 재생 등의 사업들이 중요해진다.
4. 성남시의 변화
1) 광주_서울의 불법거주를 해결할 장소
현재 성남시의 시작이 된 광주대단지는 처음에는 서울시가 기획한 사업이었다. 서울시는 이 땅을 매입하여 서울시의 무허가 달동네 거주민들에게 분양하였다. 특히 용산역 인근의 거주민들에게 우선적으로 분양했다. 토지는 분양 받았으나 건물을 세울 비용은 부족했기에, 이주민들은 대부분 천막으로 임시 숙소를 지었다. 성남의 자연스러운 지형을 무시하고 오직 효율만을 추구한 바둑판 모양의 필지 설계는 거주자들의 불편을 초래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집값은 가파르게 상승하여 어마어마한 프리미엄이 붙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민들의 분노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격렬한 다툼이 발생했다. 이러한 진통 속에서 성남이라는 도시가 시작되었다.
2) 분당_강남을 대신할 신도시
1990년대, 서울의 인구를 해소할 신도시를 계획하게 된다. 경부고속도로 주위에 포도송이처럼 매달린 신도시들이 이렇게 생겨났다. 이 때의 신도시는 시민들의 생활권을 고려했다. 지하철 노선을 설계하고 이렇게 세워진 도시의 ’척추‘ 사이사이에 주거지를 넣고, 도시의 중심이 되는 공원도 추가했다. 그중에서도 분당은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도시 자체로만 살폈을 때에는 가장 성공적인 도시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분당이 성공한 이유는 이 도시를 채운 사람들 때문이다.
3) 판교_과학 기술이 있는 도시
베드타운으로서의 기능에만 몰두한 분당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세워진 판교는 자족도시를 목표로 설계되었다. 서울 강남의 유니콘 기업들에게 임대료의 특혜를 제공하고 대신에 일정 기간 동안 용도 변화를 금지하는 조건으로 대거 영입하여 테크노밸리를 형성하는 등, 베드타운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닌 생산도 함께 하는 도시를 목표로 개발했다. 판교의 거주 지역은 대체로 분당과 비슷하지만, 판교 주택단지를 통해 다양한 분위기의 고급 빌라촌을 형성하는 등 다양함을 추구했다.
도시의 변화를 살펴보며 ’어떤 도시가 좋은가? 도시는 어떤 식으로 발전해나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도시는 지금 이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한다. 목소리를 키우고, 이 도시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외치고 활동할수록 내가 사는 도시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해갈 것이다.
성남을 위한 덧붙임_
성남시는 원도심 지역을 ”성남형 재개발 사업모델“을 만들어서 지원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구시가지가 가진 장소성, 입지의 장점은 아직까지 너무 저평가 되어 있다고 본다. 수정구, 중원구는 앞으로 큰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큰 가능성을 지닌 만큼 개발의 압력이 매우 높고, 개발하는 순간 외부의 자본에 의해 점령되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이 된다. 경제적 흐름에 개발을 맡기는 순간, 현재 이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저소득층은 모두 밀려나게 된다. 반면 포용 계획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다보면 경제 논리와 상충되며 또다른 마찰이 생겨나게 된다.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인지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도시를 유토피아로 만들 수 있을까?
유토피아는 저소득층이 선택할 수 있는 장소가 많고, 중산층이 선택할 수 있는 장소가 많고, 고소득층이 선택할 수 있는 장소가 많은, 그런 다양성의 공간이 아닐까. 앞서 말했던, 우리나라의 초기 도시개발은 고소득층이 선택할 수 있는 장소 위주로 이루어졌고 그래서 그외 다른 계층의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가 고소득층이 되기 위해 사는 것, 고소득층이 될 때까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자신의 단계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것이 유토피아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압축성장에서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지켜보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시간, 사회적 다양성에 대한 포용을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지금 현재의 진통은 우리가 성숙하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도시는 개방적이고 변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만 우리는 너무 많은 변화를 너무 빠르게 겪었기 때문에 숨을 돌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도시 레벨링 지도: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하여 3차시는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지금의 이 땅이 성남, 분당, 판교라는 도시의 이름을 갖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이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의문과 태도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 줌(zoom)회의로 진행된 특강은 편집을 거쳐, 영상으로 공유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