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시는 성남학연구소 윤종준 선생님의 특강(비대면)으로 진행된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역사와 환경과 생태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고 교류할 수 있는 예술학교로서, 지금의 도시가 있기 전 이 땅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을 특강의 첫 번째 순서로 삼았다.
성남의 역사, 길 위에 피어난 성남 문화
by 윤종준(성남문화의집 관장, 성남학연구소 상임위원)
1) 지금의 이 땅이 과거에도 있었다는 것
‘성남’이라는 도시는 본디 경기도 광주에 속해있었다. 따라서 행정지명으로서 성남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 것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성남이라는 이름을 갖기 전에도 이 땅은 존재했으며 성남의 물줄기, 탄천은 그때에도 이곳을 흘렀다.
2) 길 위의, 보이지 않는 것들
역사는 시간의 축적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 쌓인 것이 역사가 된다. 그리하여 성남의 길을 걷고, 탄천의 물줄기를 따라 가던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에 주목한다.
성남 지역은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수도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교통의 요지로서, 다시 말해 길로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남의 길을 오갔고 길 위에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이 쌓였다. 가령 영남길을 살펴본다. 한양에서 출발하여 영남길을 따라 지금의 판교 지역에 도착하면 해가 저물고 하룻밤을 자게 된다. 그리고 다시 용인을 지나, 문경새재를 넘어, 부산까지 이어지는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나누었던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은 뒷담화였을 것이고 어떤 것은 소문이었으며, 때로는 전설이나 신화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기록되고 검증된 사연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3) 심부름꾼은 아직 판교에 있다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영남길을 살펴보면, 지금 현재의 판교 지역인 ‘낙생’을 찾아볼 수 있다. 판교라는 이름은 운중천에서 흘러내려오는 냇물을 건너는 다리의 이름, 즉 널빤지로 만든 다리라는 의미이다.
판교 지역은 서울에서 출발하여 처음으로 밤을 맞이하게 되는 곳이다. 즉, 파발을 보낸 왕이 명령을 돌이키고 싶을 경우 첫날밤을 보내는 판교로 재빨리 사람을 보내서 되돌릴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심부름꾼은 아직 판교에 있다- 이 말은, 아직은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4) 보이지 않는 궁궐, 낙생행궁
행궁이란 임금이 외출을 나왔을 때 머물던 임시 궁궐을 부르는 말이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과거에는 성남에도 궁궐이 있었다. 임금은 종종 성남에 왔고 그럴 때면 지금의 판교 지역인 낙생에 지어진 궁궐에서 묵었다. 임금과 그를 뒤따르는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던 모습을 떠올려본다.
5) 군사훈련을 위한 그린벨트
임금이 성남으로 외출을 나온 이유는, 성남에서 행해지던 군사훈련을 감독하고 치하하기 위해서였다. 군사들은 탄천 옆의 초원에서 주둔하며 훈련을 했다. 훈련은 며칠씩 이어졌고 군사들은 야외에서 막사를 치고 그곳에 묵었다. 조선 초기에만 해도, 왕들 또한 야외의 막사에 머물렀지만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서 행궁을 짓고 왕의 일행은 궁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성남 일대는 군사훈련장으로서,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했고 수렵도 개인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사냥 역시도 군사훈련의 일환으로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허가가 필요했고, 자격을 갖춘 공신들만 살 수 있었다. 이렇게 제한되었던 녹지, 과거로부터 내려오던 일종의 그린벨트 위에 판교 신도시가 들어선 것이다.
6) 성남을 거쳐 간 크고 작은 이름들
우리가 역사책에서 보았던 여러 이름들이 성남을 거쳐 갔다. 목은 이색의 아들은 귀양 가는 길, 낙생역을 지나며 고려의 몰락과 조선의 건국 사이 혼란한 시기의 망연한 심정을 시로 썼다. 이후 세종대왕은 성남의 군사훈련을 참관하러 내려온 김에 하대원에서 머물렀고, 연산군도 그러했다. 세조의 부인인 왕후 윤씨가 온양온천에서 요양하다가 숨을 거둔 뒤,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신을 모셔오며 지나온 길이 바로 영남길이었다. 조선의 문물을 일본에 전하는 수백 명의 통신사들은 판교에서 여행 첫날의 피로를 풀었다.
이렇게 커다란 이름들만이 아니라 작은 이름들, 무명에 가까운 이름들도 성남의 길을 걸어 다녔다. 용인에서 30리를 걸어 판교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고, 한강을 건너서 숭례문에 도착하니 별이 떴다는 김도수의 기록이나 판교에 사는 어린이가 장 보러 나간 엄마를 찾아 서울까지 가버렸다는, 일제 강점기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일들이 기록되거나 기록되지 않은 채로 축적되었다.
도시 레벨링 지도: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하여 2차시는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지금의 이 땅이 과거에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레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 줌(zoom)회의로 진행된 특강은 편집을 거쳐, 영상으로 공유될 예정이다.